그 우물에 비단이 잠겼다
나기연
언제인가 우주로 납치된 악어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악어는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목도리는 지구에서 온 것이다. 누에가 직접 실을 뽑아 목도리로 만들었다. 누에는 섬유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로 방적 팀의 골칫덩이였다. 그는 환멸스러운 삶을 살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삶이 끔찍해졌을 때 마지막 희망으로 섬유회사 사장을 연쇄 살충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고소장은 법정까지 가지 못했다. 섬유회사 사장은 가을이 온 틈을 타 불을 질렀다. 타닥. 탁. 나방이 불타는 소리가 어둠을 타고 온 하늘에 울려 퍼졌다. 누에의 비명은 땅으로 고꾸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포충기가 일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편안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야산 입구에서 불에 탄 나무가 발견되었다. 사람들이 의아해하자 섬유회사 사장이 나와 미소로 답했다. 누가 담배꽁초를 잘못 버리고 갔나 봐요. 가을이라 그런지 불이 금방 옮겨붙더라고요. 어젯밤에 제가 발견하고 금방 불을 껐습니다. 다들 안심하세요. 불이 애먼 곳까지 번지지 않았으니까요. 사장은 최고급 실크로 만든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기침을 두어 번 했다. 아휴. 가을이라 그런가 공기가 많이 건조해졌네요. 다들 저희 공장에서 만든 스카프 좀 보시겠어요? 부드럽고 따듯하답니다. 사람들은 평소와 같은 아침을 시작했다. 나방의 시체는 흔적도 남지 않았다.
누에나방 한 마리가 간신히 도망쳐 버려진 우물에 터를 잡았다. 섬유회사는 그야말로 살충 체제 그 자체였다. 누에는 자신의 자손을 물에 끓여 실을 뽑았다. 한 번쯤 사장에게 누에실이 아닌 다른 실로 스카프를 만드는 건 어떻겠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누에는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만한 소리를 낼 수 없어서 글로 소통해야 했는데 그러려면 사람의 글을 쓸 수 있는 작업반장의 도움이 필요했다. 작업반장하고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작업반장은 그를 싫어했다. 벌레가 사람 시늉을 한다며 우스워했다.
누에가 하는 일은 고치를 물에 끓여 실을 잣는 것이었다. 누에는 끓는 물에 누에고치를 쏟아 넣을 때마다 스스로가 끔찍해 견딜 수가 없었다. 눈물이 흐르니 시야에 물기가 져서 작업 속도가 느려졌다. 작업반장은 눈물을 닦느라 여념 없는 누에의 손을 억지로 물속으로 넣었다. 손끝에 보드라운 실이 엉켰다. 나방에게 눈물은 없어. 그건 안구에 김이 서린 거야. 누에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아니야. 이 슬픔은 정말이야. 누에는 울 줄 알았다.
누에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으로 들어갈 수 없어 몇 분이고 문 앞에서 앞에서 서성였다. 작업반장의 눈을 피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번번이 잠자리채에 잡혀 작업실로 돌아왔다. 휴게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말했다. 또 탈출했어? 요즘 누에가 자주 탈출하네. 누에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누에는 간혹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자신인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실을 잣는 열기를 느끼게 된 순간부터? 동료의 소리가 감지되었던 순간부터? 아니면 우리에게도 심장이 있다는 걸 깨달았던 그 순간부터? 누에는 애벌레였을 때부터 동료의 소리를 알 수 있었다. 사각사각. 홉홉. 사각사각. 홉홉. 뽕잎을 먹는 친구들의 소리가 피부를 타고 심장께로 몰려들었다. 움튼다. 따뜻한 고동소리. 부드러운 음률. 몸을 데우는 생명의 소리. 찬의와 찬사. 애정과 희망. 앞으로 함께 할 나날이 심장께에서 태어나 입으로, 숨으로, 눈으로 꽃을 피웠다. 누에는 3일간 맛있게 뽕잎을 먹고 첫 잠에 빠져들었다. 이틀간 꿈을 꾸었다. 우리는 하얗고 폭신한 피부로 몸을 감싸고 뽕나무 잎에 누워 은하수를 보았어. 입도 없고 귀도 없었지만 서로가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었지. 서로 행복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잠에서 깬 누에는 옆에 있는 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친구. 좋은 꿈 꿨어? 나는 나방이 되는 꿈을 꾸었어. 정말 아름답더라. 친구는 대답이 없었다. 새하얀 몸으로 뽕잎만 갉아먹었다. 사각사각. 홉홉. 사각사각. 홉홉. 그래도 누에는 행복했다. 한 번 더 자고 일어나면 그때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거야. 맛있게 먹어 친구. 사각사각. 지금은 자라는 게 더 중요하니까. 홉홉.
누에는 사람처럼 태어나자마자 나이를 1살로 쳐서 이때를 1령이라고 한다. 1령충은 삼 일 간 뽕잎을 먹고 이틀간 잠에 빠지는데, 이러고 나서 첫 번째 탈피를 마치면 바로 2령충이 된다. 누에는 폭신하고 촉촉한 거즈 위를 기어다니며 뽕잎을 갉아먹는다. 사각사각. 홉홉. 사각사각. 홉홉. 이 생명이 살아가는 소리는 아주 작고 미세하다. 먹고 배변하고 먹고 배변하고를 반복하며 몸체를 키워간다. 사람 새끼손가락 마디만 했던 누에는 점점 길어지고 통통해진다. 마치 돌돌 말아놓은 양털처럼, 폭신하고 포근한 인상으로 자란다. 그렇게 3령충과 4령충 시기를 지나 무사히 5령충이 되면 어느 순간 먹는 것을 모두 멈추고 유충으로서 성장을 멈춘다. 이제 온전히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누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아파트에 들어가 마지막 배변을 한다. 고치를 말기 전 몸에 있는 것을 모두 빼내는 행위다. 앞으로 긴 잠에 들어야 하니까 몸을 가볍고 고단하게 만든다. 누에는 입으로 실을 뽑아 동그란 자기만의 집을 만들고 몸을 웅크린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아름다운 성충이 되어 서로를 알아볼 친구를 기대하며 희망에 젖는다. 이 잠이 끝나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을 테지. 성충이 되면 달빛을 향해 올라가자. 뽕나무 잎에 매달려 은하수를 보자. 우리는 말도 못 하고 듣지도 못하지만 페로몬으로 충분히 대화할 수 있을 거야. 나방은 사랑을 모르지. 하지만 애정을 알아. 서로를 알아. 마음을 알아. 우리에게도 심장이 있어. 아름다운 밤에 만나, 친구들. 옆방 친구도 열심히 누에실을 뽑았다. 이제 곧 유충 기관은 퇴화하고 성충 기관이 생성될 것이다. 날개와 다리가 생기고 짝짓기를 할 성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것을 탈바꿈이라 한다. 누에는 기운을 빼고 시간에 몸을 맡겼다. 생명의 윤리가 우리를 보살필 테니. 깊은 잠에 들었다. 꿈조차 꾸지 않는 밤이었다.
사람은 끓는 물에 누에고치를 삶아 실을 잣는다.
친구들은 몸이 익어 죽었다. 성충이 되지도 못하고 번데기인 채로 죽었다. 공장에 견학을 온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맛있는 번데기 냄새가 나네. 누에고치 하나가 냄비에서 빠져나와 바깥으로 늘어져 있었다. 하얀 실로 된 길이 선반 쪽으로 이어졌다. 그 끝에 누에나방 한 마리가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었다. 잠을 자다가 엄습하는 불안감에 눈을 떴다. 갑자기 들이닥친 뜨거운 물이 여물지 않은 몸을 적시고 자신을 황망한 죽음 끝으로 끌고 갔다.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다급하게 변태했다. 풀어헤친 실을 손잡이 삼아 위로, 또 위로 올라갔다. 몸에 실이 엉켰다. 간신히 냄비를 타고 올라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 마르지도 않은 몸으로 몸을 뒹굴어 선반 아래로 들어갔다. 누에는 아주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의 친구들. 나의 미래. 달과 은하수. 이 모든 것이 끓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누에는 노동자가 되었다. 사람 흉내를 내며 목숨을 부지했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없었고 말도 못 알아 들었다. 다른 사람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시도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은 누에의 페로몬을 읽지 못했다. 유일하게 작업반장만이 그 속내를 알아챘다. 작업반장은 누에를 싫어했다. 누에는 어쩌면 저 사람도 과거에 누에고치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살고 싶어서, 누에로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어서, 저보다 훨씬 더 완벽하게 사람 흉내를 내게 된 게 아닐까. 실은 자신의 말을 ‘눈치챈’ 것이 아니라 모두 ‘알아들으면서’도 그것을 부정하는 게 아닐까. 그로써 누에고치였던 과거를 지우고 처음부터 사람이었던 양 두 발로 서 있는 거 아닐까. 하지만 이미 완벽한 사람이 되어버린 작업반장에게 이를 대놓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나는 누에야. 나는 나방이야. 누에는 조용히 자신의 정체성을 읊조렸다.
쥐꼬리만한 봉급을 위해 물을 끓이는 자신이 끔찍했다. 이렇게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끔찍했다. 고치의 실은 위로 둥둥 뜨고 번데기는 아래로 가라앉았다. 누에는 섬유공장 사장을 고소하기로 했다. 누에고치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실을 뽑아보자. 그것도 아니라면 누에가 다 변태하고 남은 고치로 실을 뽑아도 되지 않느냐. 하지만 누에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낼 수 없어 글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글을 쓸 줄 아는 작업반장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를 자기 편으로 만들 자신이 없었다. 누에는 그날 밤부터 조금씩 글 쓰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3년 후, 드디어 사장에게 고소장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고소장?
네. 그런데 글씨가 괴발개발이라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건지….
어디 봐.
[고소장. 발신인. 노에. 누에. 누에에서 실을봅는 건잘못 된일입니다.당신을 고소합이다]
누에?
예.
이거 그 방적 팀에 있는 바보 이름 아냐?
네. 맞습니다.
무시해.
네.
고소장은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야산에서 불이 났다. 건조한 날씨로 산불위험이 높아진 시기였다. 불은 마른 잎사귀를 타고 내려와 순식간에 섬유공장 기숙사에 옮겨붙었다. 공장에는 야간 경비원 한 명과 연휴에도 공장에 남은 노동자 몇몇이 있었다. 누에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기숙사에 뛰어들었다. 누에의 등에 불이 붙었다. 끓는 물에서 눈을 떴던 그때와 다른 끔찍한 열기가 누에의 몸을 잡아먹었다. 선연한 화마가 살갗을 위협하자 누에는 창문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부지했다. 노동자들이 아직 방 안에 있었고 1층에 있던 경비원은 진작에 도망갔다. 누에는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타닥. 탁. 불에 타는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화상을 입어 진물이 나왔다. 뒤를 돌아 보았다. 불이 커다란 아구를 벌려 나무로 된 기숙사를 잡아먹었다. 벗어날 방법을 찾고 싶었다.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누에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고 엉금엉금 기어서 어둠이 장악한 풀숲으로 들어갔다. 나방에게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누에는 한참을 풀숲을 기었다. 몸에 풀독이 올라 따가웠다. 마른 흙먼지가 화상 위에 가라앉아 피와 살이 엉켰다. 날개는 반절이 뜯겨 나갔고 한 쪽 다리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제까지 고치를 삶던 양손은 절망과 해탈로 기운이 없었다. 시원하고 깨끗한 물이 마시고 싶었다. 이제 자신이 누구인 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고 싶었는지는 모두 상관없었다. 오직 물. 맑고 깨끗한 물만이 유일한 생명줄처럼 눈앞에 아른거렸다. 오래전 폐쇄된 우물이 하나 보였다. 하도 오래되어 안전을 위해 덮어 둔 뚜껑이 깨져 있었다. 누에는 그 사이로 떨어졌다. 퐁당.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우물 속에서 빛났다.
우물에는 아직 물이 남아 있었다. 고치를 풀어헤치던 뜨거운 물이 아니라, 노동자의 집을 잡아먹었던 뜨거운 불이 아니라, 시원하고 청량한 맑은 우물물이었다. 한때는 마을의 중심이었을 우물은 수도관이 매설된 후 그 역할을 잃었지만, 아직 산속에서 시냇물이 내려와 그 안을 순환시키고 있었다. 누에는 차갑고 깨끗한 물 위에 둥둥 떴다. 깨진 뚜껑을 통해 달빛이 들어왔다. 이상하리만치 모든 게 포근했다. 그 속에는 그것도 빛이라고. 그 사이로 보이는 그것도 은하수라고. 누에는 행복했다. 온몸에 물이 스며들었다. 시원하고 달콤했다. 나의 친구. 나의 은하수. 나의 삶. 누에는 어느 때보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첫 잠보다 더 따듯하고 마지막 잠보다 더 무거운 잠에 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누에는 뽕나무 잎에서 섬유질을 추출했다. 누에실만큼이나 질기고 튼튼했다. 이것 봐. 누에실 말고도 방법이 있잖아. 섬유질을 꼬아 실을 만들었다. 누에는 사장에게 말했다. 봐봐. 내가 맞지? 언제나 방법은 있어. 누에는 신나서 한 시도 쉬지 않고 실을 뽑았다. 하나의 실을 뽑을 때마다 하나의 삶이 되살아났다. 끓는 물속에서 생을 마감을 친구들이 뽕잎 실이 되어 살아났다. 이 실을 먹고 다시 성충이 되렴. 근사한 몸을 갖자. 어서 와, 친구들. 여기가 바로 우리가 살 세상이야. 누에는 실을 엮어 목도리를 만들었다. 얇고 질기고 튼튼한 목도리였다.
그 목도리는 어느 슬픈 악어가 주워 목에 둘렀다. 그리고 우주로 납치당했다. 나는 언젠가 이 악어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담이 너무 길어졌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건 우주에 납치된 악어에 대한 이야기다. 누에가 만든 비단을 목에 두른 악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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