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걸지 마세요
나기연
25세기 현대사회, 2400년에 새롭게 급부상한 공포증의 이름은 ‘전화를 걸지 마세요'였다. 이는 유명 ○튜버 Z의 마지막 유언에서 시작되었다. 일각에서는 과연 이것을 유언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지만 대외적으로는 ‘Z의 유언'이라고 불리며 글로벌 가상 세계 G-land를 기점으로 퍼져나갔다. 어떤 맥락에서는 유언이 맞았고 어떤 맥락에서는 유언이 아니었다.
○튜버 Z는 초국적 기업 G사에서 만든 동영상 공유 플랫폼 ○튜브에서 활동하는 유저였다. 그중에서도 Z는 실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카메라 특수 장비를 이용해 만든 가상 캐릭터로 활동하는 버추얼 ○튜버로, 줄여서 버튜버라고 불렸다. Z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버추얼 디자인을 자주 업데이트하기로 유명했다. 이는 꽤나 특색 있는 방식이었는데 대부분의 버튜버가 자기 질병이나 나이 듦을 드러내지는 않았던 데에 비해 Z는 다크서클이나 푸석한 피부, 주름과 주근깨까지 있는 그대로 업데이트하여 드러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버추얼을 늙지도 않고 병들지 않는 나만의 신인류 정도로 생각하는 거 같았다. 처음 버추얼이 나왔을 때는 가상 캐릭터 너머에 진짜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마니악 하게 여겨졌지만 그것도 벌써 몇 세기 전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꿈과 자아를 투영한 늙지도 다치지도 않는 매끈한 버추얼 캐릭터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디스플레이로 재현할 수만 있다면 현실보다 다양한 피부색과 동공 색, 손 크기, 발 크기, 목 길이, 귀 모양과 머리카락 색, 치아 개수, 콧구멍 모양까지 전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상상한 나의 모습을 조형할 수 있다는 것이 버추얼 세계의 매력이었다. “내가 만든 버추얼이 곧 나 자신입니다. 현실을 뛰어넘은 본연의 ‘나’를 만들어 보세요.” 이것이 가장 유명한 버추얼 캐릭터 제작사의 홍보 문구였다.
전 세계 버추얼은 대부분 유명 초국적 기업 G에서 만든 가상 세계 G-land에서 활동했다. 무한한 세계에서 버추얼 인구는 끊임없이 늘어났고 저장 공간이 허락하는 한 이 세계는 멈추지 않았다. 벌써 전 세계 인구의 76%가 G-land의 유저였다. G-land가 점점 확장되면서 아예 개인 유저가 다른 유저를 상대로 운영하는 사업체도 등장했다. 초기에는 몇몇 버추얼 유저들이 손재주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버추얼 캐릭터 제작 커미션’을 받는 데서 시작했다. 커미션 시장은 점점 더 커지고 세분화되어 미용실, 성형외과, 피부과, 태닝숍 등등의 미용 시장으로 확장되었고 후에는 버추얼 유저가 머무르는 집을 지어주는 건설사도 생기고 유명한 버추얼 유저를 ○튜버로 데뷔시키는 매니지먼트도 생기고 가상 공간의 땅과 건물을 판매하는 공인중개사도 생겼다. G-land는 이러한 사업 체계를 정비하고자 공식적으로 사업자 등록제를 만들고 자사의 통제 하에 시장이 활성화 되도록 유도했다.
어느 학자는 가상 세계는 더 이상 인간의 ‘제2의 자아가 활동하는 곳’이나 ‘부차적 세계'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미 G-land는 완전히 하나의 상업도시에 준하는 힘과 체계를 갖고 있었다. 그는 이제 인간은 ‘중첩된 존재’ 로서 본 세계와 가상 세계를 왔다 갔다 하지 않고, 두 세계에 동시에 접속해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점점 더 사람들은 현실과 온라인 사이의 괴리에 무감각해지고 무의식적으로 현실과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일을 동일시하게 된다며 주장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분명 가상 세계는 현실과 다르기에 어느 날엔가 이 괴리가 폭발적으로 터질 것이며 이때 개인이 느껴야 하는 혼란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경고를 날렸다. 요컨대 사람들이 G-land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게 당연해질수록 후폭풍처럼 감당해야 할 부작용도 상당해진다는 주장이었다. 사람들은 G-land를 현실처럼 감각했다. 이것은 믿음 이전에 기본 전제의 문제였다. 이들에게 G-land에서 일어나는 일은 언제나 사실이었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이 언제나 사실인 것처럼.
G-land에서는 ‘무엇이 진실인가'보다 ‘어떻게 개성 있는 자신을 만들어 냈는가’가 중요했다. 종국에는 소수 인종과 희귀병, 장애마저 유니크한 개성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는 모든 특성이 개성이 된 공간이야말로 실질적인 평등을 이룬 거라고 주창했다. 이에 반박하는 말은 잠시 들리다 사그라들었다. 어쨌든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실재였고 모두가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믿었다. 믿음은 어떤 것보다 강한 동력이었다.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사람들은 그 샘에 자기 얼굴을 비춰보고, 그곳에 비치는 얼굴과 사랑에 빠졌다.
앞서 말했듯, Z는 자신의 질병이나 늙음에 솔직한 버튜버였다. 이는 다른 버튜버와 비교해 특색 있는 점이었고 얼마간 다른 버추얼 유저 사이에서 유행으로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버튜버 Z가 보여주는 변화의 모습은 진실일까?”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도 G-land에서 일어나는 일에 의문을 품지 않았으니까. 버추얼 캐릭터를 자신의 개성에 맞게 업데이트하는 것은 모든 유저의 자유이자 의무였고 Z는 단지 자기 버추얼 캐릭터의 질환과 노화의 과정을 특색 있게 표현했을 뿐 의심할 이유도,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Z만의 특색은 더 많은 팬덤을 끌어들이는 구심점이 되었다. 어느 헤비 팬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인체의 변화에 순응하는 Z의 철학을 존경한다.” 다수가 긍정했다. 많은 사람이 Z를 사랑했다. Z의 인기를, 상냥함을, 유쾌함을, 활짝 웃는 미소를 모두.
Z의 나이는 어느새 예순에 접어들었다. 자근한 눈살 주름과 그 곁에 전보다 색이 짙어진 주근깨. 약간의 잡티와 20대부터 트레이드마크처럼 붙어있던 청색 다크서클. 머리도 희끗희끗해서 개성 있었다. Z는 20대부터 거의 모든 생애를 G-land에서 보냈고 동시대 버튜버로서도 가장 오래 활동을 한 사람에 속했다. 오래 활동한 만큼 그는 두 개의 ○튜브 채널을 갖고 있었고 수많은 생애 영상기록물을 갖고 있었다.
사건은 Z의 예순 번 째 생일에 벌어졌다. Z는 G-land에 있는 가장 비싸고 질 좋은 파티룸을 빌려 생일 파티를 열었다. 가장 오랜 팬이 나와 연설을 했다.
“저는 당신이 스무 살 햇감자 같던 시기부터 봐왔습니다. 당신과 함께 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당신은 언제나 상냥하고 강인한 모습으로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우울할 때면 당신의 영상을 정주행하며 언제나 뚜렷하고 당당한 모습에 힘을 얻었지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당신은 참 변화무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아웃도어 스포츠를 좋아하더니 20년 전 즈음에는 돌연 독립영화에 빠져들었고 6년 전부터 갑자기 노래를 시작하더군요. 그때마다 영상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종종 있기는 했습니다만 여전히 상냥하고 강인한 Z의 모습에 결국 다들 돌아오더군요. 어쩌면 이렇게 꾸준히 새로운 걸 배우고 익히는 모습이 오히려 당신의 꾸준한 강인함과 상냥함의 근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의 팬이자 친구로 함께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청중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무대 위 휘장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늙은 당신, 버튜버 Z. 사랑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 Z의 40주년 감사 인사를 할 차례였다. 평소보다 더 잘 꾸며진 옷으로 업데이트한 Z가 무대에 등장했다. 무대 발언이 있을 때 객석은 자동 음소거가 되기 때문에 그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말은 조용하고 요란스럽게 채팅창에서 일어났다. 스탠딩 마이크 앞에선 Z가 멋쩍게 웃었으며 말을 시작했다.
“벌써 이 Z가 이곳에서 활동한 지 40년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 그동안 Z의 이름으로 업로드된 영상을 전부 찾아봤습니다. 네. 맞습니다. Z의 두 개 채널에 있는 그 영상을 전부 말입니다. 그 아래 댓글도 전부 읽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이 보내주신 실물 편지와 선물도 전부 꺼내 봤습니다. 참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꿈같은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떻게 여러분은 Z를 이다지도 믿고 사랑할 수 있으셨나요.”
채팅창에서는 여전히 Z를 칭송하는 말이 올라왔다. 40년이 지나도 팬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극찬하는 말도 있었다. Z는 어떤 결심을 한 듯 숨을 고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언뜻 비장한 얼굴처럼 보이기도 했다.
“Z를 사랑하는 여러분을 더 이상 기망할 수 없습니다. 이제 진실을 밝힐 때가 왔습니다. 저는 3번째 Z로서 그동안 해왔던 사기행각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Z의 뒤로 홀로그램이 켜지며 낯선 사람의 증명사진이 올라왔다. 버추얼 캐릭터가 아니었다. 진짜 눈과 진짜 코, 진짜 입과 진짜 피부를 가진 진짜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는 호쾌하게 미소 짓고 있는 젊은 남성이었는데 길게 기른 머리를 높이 올려 묶고 당당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맑고 당찬 눈에서 건강한 에너지가 쏟아져 나왔다. Z의 가장 오랜 팬은 그 얼굴을 보자마자 마치 젊었을 적 Z와 비슷한 느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지나이다 토레스(Zinaida Tores). 첫 번째 버튜버 Z입니다.”
예순의 Z가 뒤에 펼쳐진 젊은 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채팅창에는 물음표만 가득했다. Z의 소속사가 빠르게 채팅방을 폐쇄하고 연결을 끊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 모든 것이 세 번째 Z의 작전이었다. Z의 마이크에서 전화 울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금방 꺼졌다.
“지나는 40년 전 스무 살이 된 기념으로 버츄얼 캐릭터를 만들어 G-land에 입성했습니다. 순식간에 인기 버튜버가 되었지요. 그 특유의 청량함과 유쾌함 덕분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나에게는 소속사가 생겼고 그의 인기는 고공행진을 했습니다. 그는 독특했습니다. 실제 자신의 신체와 버추얼 디자인을 동기화 시키는 방식이 그러했지요. 바다에 다녀오면 한층 어두운 피부 톤으로 돌아왔고 부상을 입으면 붕대를 감쌌고 인기 버튜버 생활을 이어가며 수면 부족에 시달리자 눈 아래 청색 다크서클을 업데이트했지요. 그의 특징은 의외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나에게 큰 불행이 닥칩니다. 평소 즐겨 하던 패더글라이딩을 하다 불운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죠.”
Z의 마이크에서 전화벨 소리와 채팅음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Z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의 소속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습니다. 지나의 죽음을 솔직히 밝히고 다 함께 애도하는 것과, 그가 가져다주는 막대한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버튜버 Z가 살아있는 척 연기를 하는 것. 소속사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했고 버추얼 캐릭터 Z 뒤에 가짜를 세웠죠. 그리고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가짜에게 위험한 외부 활동을 금지시켰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가짜가 과거에 자신이 몸담았던 영화계로 돌아가고 싶어 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비밀 유지 계약서를 쓰고 저에게 Z의 자리를 물려준 후 해방되었죠.”
소속사 안에서 급히 합의가 된 것인지 Z의 ○튜브 페이지와 G-land 홈이 잠시 닫혔다. Z의 마이크에서 여전히 전화 울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제가 왜 갑자기 이렇게 진실을 밝히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저는 Z가 소속되어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매니저 팀 사원이었습니다. 두 번째 Z가 퇴사가 결정된 후 저는 그 다음의 버튜버 Z로 직무가 변경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버튜버 매니저 생활을 하며 가장 Z와 유사하게 연기할 수 있을 거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후 저는 회사의 작은 골방에 갇혀 Z의 모든 영상을 복기하고 그의 말투와 사랑스러움을 학습해야 했습니다. 제가 실수를 할 때마다 사장의 폭언과 학대를 감당해야 했고 두 번째 Z의 뛰어난 연기력과 비교당하며 인격모독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제 Z가 된 지 6년 차고 얼추 그를 흉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여전히 저는 Z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Z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왜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사랑하신 겁니까?”
세 번째 Z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제 곧 회사는 이상한 사람이 Z의 계정을 해킹해 그의 예순 생일잔치를 망쳤다고 언론 플레이를 할 것입니다. 그것을 대비해 그간 사장과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지금 공개합니다.”
지나의 사진 옆으로 △△엔터테인먼트 사장과 세 번째 Z가 나눈 대화 내용이 올라왔다. 세 번째는 어딘가로 눈짓을 하더니 박수를 한번 짝 쳤다. 순간 객석 음소거가 꺼지고 진위를 밝히라는 청중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여러분. 아무것도 믿지 마십시오. 지나는 죽었습니다. Z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켜본 Z는 거짓입니다. 그는 실존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장님. 더 이상 전화를 걸지 마세요. 이제 지나도, 버튜버 Z도 이 세상에 없는 겁니다.”
이 말을 끝으로 세 번째 Z는 G-land에서 로그아웃했다. 돌연 예순 생일 파티에서 이상한 폭로와 함께 눈앞에서 사라진 Z를 두고 남겨진 이들끼리 숱한 말이 오갔다. 개중에는 ‘어쩐지’라는 말도 있었다. 어쩐지 Z가 가끔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게 옳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당혹스러움과 어이없음을 나타내는 말들이었다. 파티장 대여 시간이 끝나자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자동으로 페이지에서 튕겨나갔지만 새로운 무료 채팅방에 모여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럼 진짜 Z는 언제까지 활동한 거야? 언제부터 두 번째와 세 번째가 생긴 거야? 그럼 우리를 죽은 사람을 살아있는 줄 알고 좋아한 거야? 아니 그보다 두 번째랑 세 번째는 왜 신상 공개가 안 돼? 지나였나 진짜 Z는 얼굴까지 공개했잖아.
‘전화를 걸지 마세요. 이제 지나도, 버튜버 Z도 이 세상에 없는 겁니다.’는 소속사 사장을 향한 세 번째 Z의 퇴사 선언이었겠지만 G-land 유저 사이에서는 ‘Z의 유언’으로 돌아다녔다. 이 말은 처음에 △△엔터테인먼트를 사기죄로 고소하기 위한 팬덤 모임에서 캐치프레이즈로 사용하며 퍼져나가다가, 그다음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실을 확인하는 목적의 밈으로 쓰이며 G-land와 ○튜브 안에서 사용되기 되었다. 누군가 댓글에 “전화를 걸지 마세요?”라고 달면 이건 이런 뜻이었다. “거짓말 같은데? 내가 전화해서 확인해 봐? 그전에 알아서 증명해.”
이는 G-land와 ○튜브에서 무분별하게 서로에게 진실을 증명시키려 하는 공방이 이어졌고 나중에는 ‘전화를 걸지 마세요’ 공포증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자 발 빠른 석사생들 사이에서 ‘전화를 걸지 마세요’ 현상을 연구하는 게 유행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걸지 마세요' 공포증은 본 세계와 버츄얼 세계를 자유롭게 향유하면서도 두 세계 간의 차이를 감각하고 이것을 무마하기 위해 과도하게 본인과 주변에 ‘진실 증명’을 요구하며, 동시에 자신의 진실을 의심받을까 봐 두려 하는 불안증, 내지 강박증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세 번째 Z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버튜버 Z의 페이지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폭로 직후 사람들이, 심지어 Z의 팬이 아닌 사람들까지 합류하여 이전 영상을 정주행했기 때문이었다. 어디서부터 가짜가 활동했는지 찾는 게 또 하나의 오락거리가 되자 조회수와 댓글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조회수는 충분히 회사에 돈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엔터테인먼트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사기죄도 성립되지 않았다. G-land의 사업 방침상 버튜버 캐릭터 하나를 한 명만 맡아서 활동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가상 세계, 특히 버추얼 사업과 가상 세계 사업을 독과점하고 있는 초국적 기업 G에 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초국적 기업 G의 사업 방침이 유저를 단순한 서비스 소비자로 위치 지음으로써 그들을 가상 세계의 시민으로 활동하게 하기 보다 오락과 도파민에 좌우되는 자본주의적 도구로서 기능하게 한다는 지적이었다. 시민으로서 기능하지 않는 유저 간의 자본주의적 성장이 얼마나 거품을 끼고 허상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꾸준히 현실과 온라인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며 경고하던 어느 학자는 가상 세계는 더 이상 부차적 세계가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가상 세계를 현실과 동시에 존재하는 동일한 세계로서 인정하고 이에 맞는 법과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에 그럼 그 법과 질서를 누가 만들고 누가 집행하며 누가 관리할 것이냐는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시간은 더 흘렀다. 가상세계는 위축되지 않았고 더욱더 확장하고 성장했다. 초국적 기업 G는 논란을 등에 업고 더 많은 수익을 창출했다. 한참 후에 지나이다가 진짜 버튜버 Z고 34살이 되던 해에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잠시 버추얼 유저 사이에서 흥밋거리가 되었지만 금세 새로운 캐릭터와 콘텐츠가 자리를 메꿨다. 때마침 G-land가 국제연합정부와 연계에 가상 세계 매뉴얼을 만들고 국체연합공동경찰 제도를 만들어 완전히 준국가에 가까운 체계를 만들겠다는 공식 발표를 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체제의 등장에 열광하느라 바빴다. △△엔터테인먼트도 이름을 바꿔 새롭게 사업자 등록을 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이 꾸준히 잘 나갔다. 남은 건 가상 세계에서만 나타나는 ‘전화를 걸지 마세요'라는 공포증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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