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고양이 씨
나기연
“내가 여기 가만히 앉아 있었거드은. 그런데 얘가 슬쩍 들어오더니 내 무릎에 머리를 막 부비는거야아. 작고, 작고, 그리고, 따듯하고 부드러웠어어. 너무 사랑스러워서 쓰다듬어 줬더니 또 막 고롱고롱거렸어어. 내가아. 다리를 톡톡 치면서 ‘올라올래?’ 물어봤단말이야아. 그랬더니 바로 폴짝 뛰어올라서 여기 눕는 거 있지이! 그래서 손으로 얼굴을 만져줬어어. 히나가 해주는 것처러엄! 그랬더니 또, 너무, 막, 귀엽게 이렇게 웃었어. 냐옹냐옹 말도 해. 내가 편했나봐아. 그래서 내가 그랬다? ‘그래. 내 다리 너 해애. 너 가져어. 다 네꺼야아.’”
“그게 지금 너한테 한쪽 다리가 없는 이유라고?”
“으응. 알아서, 자알, 가져가더라구우.”
짜루는 내 눈치를 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고양이가 짜루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했단 걸까. 환부 아래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피가 나면 지혈을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더니 대충 자기 옷으로 허벅지를 둘둘 말아놓기는 했다. 그래도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며칠 전 낡은 걸레를 빨아 널었을 때 물 떨어지는 모습이 딱 이랬다.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짜루의 허벅지가 반 토막이 났다. 마음이 아팠다. 짜루가 답답할까 봐 대문만 닫고 나간 게 문제였다. 나름 철저하게 문단속을 한다고 했는데 저 작은 짐승에게 달동네 주택가의 담장은 별문제가 안된다는 걸 망각했다. 짜루는 순식간에 다리 한 짝이 사라졌는데도 아무런 동요가 없어 보였다.
“고양이야 고양이이. 알지이? 나는 고양이가 제일 좋아-!”
내 눈에는 귀가 달렸든 날개가 달렸든 다 똑같은 들짐승 같은데 짜루는 ‘저거는 고양이고오 이거는 박쥐야아. 얘는 햄스터고오 쟤는 강아지야아.’ 라며 항상 말해줬다. 어쩌다 마트에서 구한 동식물 도감을 선물한 뒤로는 설명 폭이 더 넓어져서 한낱 벌레를 볼 때도 ‘이건 장수풍뎅이! 이건 침 노린재! 히나아!’ 이런 식이었다. 아무튼 짜루는 기뻐 보였다. 그건 좋은 일이었지만.
“그럼 그 고양…이? 랑 네 다리는 어디 있어?”
“저 뒤에서 놀고 있지!”
“아하….”
소파 뒤에서 고양이가 짜루의 다리를 갖고 놀고 있었다. 고양이는 몸집에 비해 손톱이 버거울 만큼 커 보였다. 꼬리가 짧았고 눈이 툭 튀어나온 것을 보아 1차 기형종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제 와 기형종이 아닌 동물을 찾는 게 더 힘들었다. 저 고양이는 아마 초기 단계 정도? 원래 모습이 대부분 남아 있었으니 심한 기형종은 아니었다. 고양이는 짜루의 다리를 살짝 깨물다가 바로 놓고 중간중간 양 발로 꾹꾹 누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살점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나는 주머니칼을 꺼내들고 말했다.
“가져다줄까?”
“응? 아니이. 조금 놀게 두자아.”
짜루는 양팔을 들고 그대로 상체를 뒤로 넘겼다. 으으응. 기지개를 켜더니 팔을 크게 돌려서 바로 앉으려는 듯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누웠다. 소파와 마루는 피범벅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고양이는 죽이든 쫓아내든 하고, 책에 절단된 다리 치료법이 있는 지도 찾아봐야 했다. 아마도 글은 짜루가 읽어주겠지만.
짜루는 글을 읽을 줄 알았다. 이전에 있던 크루에서 어른들이 가르쳐 줬다고 했다. 시가지에 있는 커다란 도서관을 차지한 대형 크루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짜루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몸으로 태어났다. 살이 멍들고 베여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고 했다. 크루에서 자기를 돌봐 줄 사람이 하나 둘 죽고, 마지막 남은 어른마저 죽어버렸을 때 짜루의 세상에 내가 나타났다. 눈보라가 치던 겨울에 몸이라도 녹이려고 아무 건물에 들어갔다가 시체 옆에서 동화책을 읽는 짜루와 마주쳤었다.
‘안녕! 기다리고 있었어. 혹시이, 나 데려갈래?’
동화책을 읽던 명랑한 목소리가 나를 향했다.
‘나는 짜루야아. 너는?’
‘... 나는 히나라고 해.’
‘으응. 그렇구나아. 자, 그럼 이제 나를 데려가 키워봐아!’
짜루는 어딘가로 뽀로로 달려가더니 커다란 가방에 온갖 통조림과 스파게티 면, 딱딱한 보급 과자를 가득 넣어 나타났다. 가방에 이상하고 반짝거리는 장식품이 많이 달려 있었다.
‘아! 깨끗한 물도 있는데. 필요해?’
짜루는 또 어딘가로 뽀로로 달려가 커다란 양동이 가득 담긴 빗물을 가져왔다. 그러고는 구석에서 빈 페트병을 한 아름 가져오더니 말했다.
‘이거 같이 병에 옮겨 담자아.’
한창 춥고 배고프던 차에 짜루와 함께 딸려오는 물과 식량이 탐났더랬다.
같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짜루는 내게 글 읽는 법을 가르쳤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었다. 밥을 먹다가 갑자기 바닥에 글자를 쓰며 시작되는 수업이었다. 내가 집중하든 말든 수업은 계속되었다. 매번 대충 들었더니 아직도 글이 어려웠다. 글 쓸 때 보면 짜루는 머리가 나빠 보이지는 않았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굉장히 행동이 어색하고 발전이 더뎠다. 하지만 본인이 전혀 기죽지 않았고 기죽일 사람도 없었고 같이 다니기에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어서 우리는 퍽 잘 맞는 파트너로 함께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짜루가 몸의 통증뿐만 아니라 마음의 통증도 잘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짜루는 공포나 슬픔이나 우울도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통증 없는 몸은 약간은 축복 같았다. 짜루는 다른 생물체처럼 공포에 등 떠밀려 사는 게 아니라 살아 있으니 살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통증과 공포를 모르는 탓일까. 때로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무통증은 너무 큰 결함 같았다. 특히 오늘처럼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낭창할 때 그랬다. 만약 내가 하루라도 늦게 들어왔으면 짜루는 과다출혈이나 세균 감염으로 진작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죽는 순간에도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마냥 졸리다고만 생각하겠지.
세상이 망한지는 꽤 됐다. 서서히 무너지다가 이제는 완전히 망했다.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집이든 절이든 갖고 있으면 언젠가 뺏겼다. 인구가 급속도로 줄면서 보금자리를 뺏기는 일은 점점 줄었다. 그래도 이곳이 안전한 보금자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불안정하고 불편한 생활이 이어졌지만 지속적이고 꾸준한 멸망 안에서 어느 순간 잃는 것과 헤매는 것은 매우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이제 멸망 이전에 인류가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간이 이룩한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고 증축과 재건은 붕괴를 전제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후회하고 울 줄 아는 사람마저 다 죽어버려서 내게 남은 선택지는 이대로 사는 것 밖에 없었다.
우리는 살아 ‘있는’ 걸까, 살아‘남은’걸까.
멸망이 도래할 때서야 진정 생물종 간의 위계는 사라지고 생물계의 평등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투명하고 파랗고 빨간 피가 공평하게 터져 나왔다. 하얗고 까맣고 누런 살점이 공평하게 떨어져 나갔다. 세포 단위의 파업을 막을 길은 없었다. 썩거나 사라졌다. 아름다움의 가치도 사라졌다. 과학이나 개념도. 예술이나 철학도. 붕괴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오히려 부흥해야 할 것이 없지야 않았겠지만 그게 무엇이었든 지금도 유효하지는 않았다. 혹시 이것을 생명이 응축된 우주 대폭발이라고 상상한 거라면…. 그건 애초에 우리 단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제는 목숨이 붙어 있으면 산 거고 목숨을 잃으면 죽는, 가장 원초적인 단위로 인류는 회귀했다. 비일상의 일상화. 비정상의 정상화. 알 수 없는 것들의 자연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상하지 않았으므로.
자기 다리가 잘린 상황에서도 해맑게 웃는 짜루는 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걸까.
‘히나아. 옛날에는 국가라는 게 있었대. 그 안에 사는 사람은 우리처럼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공간에서 계속 살았대. 죽을 때까지. 진짜 심심했겠다. 그치이?’
일전에 짜루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짜루랑 있으면 뇌신경이 마비되는 것처럼 마음이 풀리고 세상이 살만해졌다. 이렇게 망해버린 세상이 살만하다니.
“히나아.”
“왜애.”
“헤헤.”
짜루가 한 팔로 소파 너머를 가리켰다. 나는 주머니칼을 벼리며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캬악. 고양이는 다리에서 물러나 이를 드러내냈다. 털끝이 바짝 섰다. 짜루가 그 소리를 듣고 소파 등받이 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니야아. 괜찮아아. 히나는 너를 나한테 데려다주려는 거야아.”
가져다 달라는 게 다리가 아니라 고양이었다. 나는 주머니칼을 집어넣고 한 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짜루가 하는 것처럼 상냥한 목소리로 해보려고 노력했다.
“짜루한테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고양이는 순식간에 털을 가라앉히더니 혀로 입가를 축였다. 그러고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폴짝폴짝 뛰어 짜루의 품으로 쏙 들어갔다. 나는 잘린 다리를 들고 고양이를 따라갔다. 잘린 다리에서는 이제 피가 나지 않았다. 붙일 수 있나 자리를 맞춰 보았지만 영 붙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저번에 식량을 구하러 나갔다가 구정물을 뒤집어쓴 헝겊인형을 봤던 게 기억이 났다. 차라리 사람 몸이 헝겊인형이었다면 이 정도는 금방 바느질로 고칠 텐데. 조금은 얼기설기해도 어차피 헝겊이니까 티도 안 날 테고. 그런데 짜루는 사람이라서 그게 안 됐다. 이제 짜루랑 산책은 못하겠지. 보름달이 뜬 밤에 강가를 걷는 것도 못 할 거야.
다행히 비상상황에 대비해 비닐봉지 안에 항상 깨끗한 천을 모아뒀다.
짜루가 멀쩡한 다리로 내 엉덩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왜애? 내 다리 붙여주게?”
“아니. 이건 못 붙여. 단면이 깔끔하지 않아서….”
목소리가 흔들렸다. 짜루가 이런 거에 상심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짜루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일어나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히나. 따듯하다아.”
그러더니 어깨에 이마를 비비적거렸다. 짜루 품속에 있는 고양이가 냐-옹. 냐-옹 맑게 울었다. 짜루의 민머리가 옷깃에 비벼질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나는 애교 부리는 동그란 두상을 한 손으로 쓰다듬다가 그대로 폭 끌어안았다. 짜루는 내 품에 쏙 들어오는 크기였다. 작고 마르고 따듯했다.
“히나아. 나는 이러고 있는 게 너무 좋아아. 내가 아직 도서관에서 사는 기분이 들어어.”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세상에서 인간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나는 짜루가 죽지 않기를 바랐다. 어렸을 적에는 기형종이 갑자기 나를 잡아먹을까 봐, 적대관계의 크루가 우리 크루를 죽일까 봐, 내가 도움이 안 되어서 사람들에게 버려질까 봐 두려웠다. 땅 오염이 심해지고 생명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을 때는 생체 밀도가 낮아져서 살해당할 위험도 사라졌지만 여전히 이러다가 깨끗한 물이 완전히 사라질까 봐, 통조림마저 유통기한이 지나 버릴까 봐, 잘 타는 장작을 구하지 못할까 봐, 또 어딘가에서 불발한 폭탄이 뒤늦게 터질까 봐 두려웠다.
이제는 통증도 공포도 모르는 짜루가 어디 툭 튀어나온 못이나 미쳐버린 들짐승에게 당해 평온하게 죽어버릴까 봐 두려웠다. 죽는 순간에도 안녀엉-! 이라고 외치면서 해맑게 떠날까 봐 불안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그 앞에서 우는 건 나뿐일 테니까. 앞으로 남은 길이라고는 멸망밖에 없는 세상이었고 어디에 누가 또 살아있을지 예측할 수도 없었다. 계속 혼자였으면 모를까, 이미 짜루를 알게 된 이상 죽어가는 세상을 혼자 여행하는 건 너무 외로웠다.
“이제 히나가 나 업어줘어. 나는 가벼우니까 별로 힘들지 않을거야아.”
“그래. 그럴게.”
“아니면 이 고양이를 어엄청 크게 키워서 타고 다니자아.”
“그럴까?”
“으응!”
-냐아옹.
고양이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꼴에 고개를 끄덕이며 짜루의 볼을 핥기까지 했다.
“짜루야. 다리 안 아파?”
“으응? 으응. 아프지 안.아아.”
나는 짜루가 아프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물었다. 아는데도 왜인지 매번 아픈 곳이 없냐고 묻게 되었다. 내일 해가 뜨면 바퀴가 멀쩡한 수레나 목발로 쓸만한 게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잘 찾아보면 어느 노인의 집에서 휠체어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짜루의 정수리에 코를 박고 더 꽉 껴안았다가 물을 끓이러 일어났다.
“히나아.”
“왜애?”
“나 고양이 이름을 지었는데 들어봐아?”
짜루가 꺄르륵 웃으며 말했다. 짜루는 내가 짜루의 말투를 따라 할 때마다 신나게 웃었다.
“고양이의 이름은 바로 ‘고양이 씨’야!”
짜루는 고양이를 번쩍 들고 말했다.
“안녕 고양이 씨! 내가 주는 밥 먹고 쑤욱쑤욱 자라야 해애! 내가 반짝반짝하는 예쁜 것도 많이 선물해 줄게에. 그리고 나랑 히나를 태워줘어. 알겠지이?”
-냐아옹!
“그래도, 이제 짜루를 자르거나아, 찌르는 거는 안돼애! 깨무는 것도 안돼애.”
-냐아옹….
짜루는 고양이에게 경고했다. 나는 짜루의 머리에 입을 한 번 맞추고 주방으로 가서 가스버너에 불을 올렸다. 끓여둔 빗물을 냄비에 붓고 깨끗한 천을 삶았다. 생뚱맞게 눈물이 흘렀다. 속이 울렁거렸다. 혼자 여행하면서 썩고 무너진 시체를 많이 봐왔는데도 인간의 단면은 익숙해지지를 않았다. 짜루 앞에서나 여유로운 척할 뿐이었다.
“고양이 씨!”
-냐아옹!
고양이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저 고양이는 진짜 사람 말을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커다란 고양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짜루라니. 분명 귀엽겠지.
“고양이 씨!”
-냐아옹!
“고양이 씨!”
-냐아옹!
고양이 두 마리가 대화하는 것 같았다. 빨리 짜루를 마저 지혈해 주고 거실도 닦아야 했다. 피가 굳으면 날벌레가 몰려와서 위생에 안 좋았다.
-냐아옹!
“응! 고양이 씨!”
이제는 고양이가 부르고 짜루가 대답했다. 다 삶은 천을 식히며 식염수를 찾았다. 짜루는 뭐 하나에 빠지면 한참을 그러고 놀았다. 아마 내가 다리를 소독하고 지혈을 할 때까지 저러고 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