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그리고-
나기연
장례식장에서 가장 하면 안 되는 것은? 부활. 하지만 재영은 그걸 해내기로 했다. 장례식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했는가. 재영은 사후 일어나는 일들에 할 말이 너무 많았다. 일단 장례식장을 장식한 꽃부터가 문제였다. 어렸을 때부터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해서 꽃이라면 질색을 했다. 이놈의 꽃은 은근히 사시사철 내내 있어서 겨울이라고 방심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살아생전 꽃다발 하나 마음대로 못 안아 봤으니까 이제라도 즐기라고? 웃기는 소리. 이미 다 죽은 마당에 꽃가루 때문에 피 볼 것도 없기야 하겠다만 고인이 절대 꽃은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당당하게 영정사진을 흰 국화로 장식한 이유는 뭐란 말인가. 재영은 관뚜껑이라도 열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활한다. 살아난다. 반드시.”
그러면 저 엿 같은 국화부터 싹 다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릴 테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었다.
“그런 이유로는 부활이 안 되세요. 기각.”
“아니, 그렇게 냉정하게 말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요.”
장례식장에서 이를 갈던 재영은 어느 순간 강한 힘에 이끌려 이곳으로 왔다. 힘이 어찌나 강력하던지 제때 멈춰 서지 못하고 머리를 박고 뒹굴었다. 아픈 몸을 부여잡고 간신히 눈을 뜨니 사방이 막힌 새하얀 공간이었다. 눈이 너무 부셔서 몇 번 눈을 감았다 떠야 했다. 재영의 앞에는 검은색 천을 온몸에 뒤집어쓴 인간(아마도)이 책상에 앉아서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이 얼굴까지 가리고 있어서 어떤 표정인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풍겨오는 분위기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인간은 자신을 ‘루카’라고 소개하며 이곳이 삶의 장과 죽음의 장 사이에 있는 얇은 공간 층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을 거쳐 영원한 죽음으로 가는 것이라고. 자기는 굳이 비유하자면 약간의 판단권이 있는 톨게이트 직원이라고 생각하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책상에 있는 빨간색 레버를 가리키며 이게 완전한 죽음으로 가는 버튼이라고 말했다. 설명을 마친 루카는 ‘구재영 씨는 이승에 별 미련이 없으므로 바로 퇴출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레버를 당기려고 했다.
“잠깐!”
그 말에 재영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오기 직전까지 보았던 엉망진창 장례식을 떠올리며 이대로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필사적으로 그의 손(아마도)을 잡고 자기가 얼마나 이승에 미련이 많은지 열변을 토하며 부활을 요청했지만 루카는 심드렁하기만 했다.
“안돼요. 애초에 장례식까지 영혼이 남아있던 것도 위에서 알면 큰일 나요. 그냥 곱게 갑시다.”
루카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럼 왜 저는 장례식까지 영혼이 남아있었는데요? 원래는 그때까지 안 남아 있어요?”
“예. 보통 죽자마자 여기로 불러요. 구재영 씨만 조금 늦어졌습니다.”
“왜요?”
“드라마 보다가요.”
“그럼 그쪽이 먼저 잘못했으니까 이 정도는 봐줘요. 진짜 3일만. 3일만 장례식 갔다가 올게요. 그리고 다시 바로 죽을게.”
“안돼요. 이제 그만 가세요.”
“안돼! 그럴 수는 없어!”
나는 처음부터 이러지도 않았단 말이야. 재영은 자기 삶에 아쉬움이 없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여겼다. 혹시나 싶어 죽던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아쉬움은커녕 성취감만 감돌았다. 그리고 서서히 아주 졸렸다. 눈을 감고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며 보름 전에 남긴 유언에 대해서 생각했다. 사후세계 같은 건 관심 없었다. 내세도 알 바가 아니었다. 단지 유서를 미리 써둬서 천만다행으로만 알았다. 그러다가 몸이 완전히 멈췄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아무런 공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드디어. 이제 의식조차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뜸 눈앞이 환해지더니 영혼이랄지 의식 같은 게 몸에서 쑥 빠져나왔다. 그러자 다시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지거나 영향을 주는 건 못했다. 그 상태로 이도 저도 못하고 죽은 몸 근처에서만 떠돌았다. 그러다가 보고 만 것이다. 자기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꽃 행렬을. 완장을 팔에 찬 동생과 하얀 리본을 머리에 꽂은 엄마를. 조의 봉투에 빳빳한 현금을 넣던 친구들을.
막 죽을 때만 하더라도 재영은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살아있을 때 듣기로 누구는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 주마등이 스치며 후회할 것들만 생각난다 하던데 자기는 그렇지도 않았다. 그나마 사람들에게 받은 애정만 떠올랐다. 칠적 한 미련 없이, 찌질한 두려움 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떠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어쩌다 보니 장례식까지 보게 되어 이렇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탓은 1차적으로 루카에게 있었다. 그러게 죽자마자 날 이곳으로 불러왔으면 됐잖아. 네가 그러지를 않았으니 내가 괜한 미련 처먹고 이러고 있는 거 아냐? 그러므로 이건 정당하다!
“잠까아안! 들어보니까 상부에서 알면 큰일 난다고 하던데, 혹시 자기 잘못 감추려고 나 일찍 보내버리는 거 아니에요?”
“네. 맞아요.”
“니 잘못이네!”
“응. 맞음.”
“뭔데 당당하지?!”
“왜 당당하지 못하지?”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인데. 루카는 기어코 레버를 당겼다. 처음 이곳에 왔던 것과 같은 강력한 힘이 재영을 뒤로 끌어당겼다. 재영도 재빨리 레버를 자기 쪽으로 당기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루카의 맞은편, 즉 재영의 뒤쪽 벽이 뻥 뚫려있었다. 재영은 레버를 양손으로 꽉 잡았다. 루카는 그런 재영의 손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손가락이 하나씩 펴질 때마다 재영의 비명이 커졌다. 이윽고 모든 손가락이 레버에서 떨어지고 아련한 인간의 손은 밋밋한 책상을 긁으며 뒤로 끌려갔다.
재영은 양 팔을 허우적거리며 허공을 몇 바퀴 구르고 난 뒤에야 간신히 바닥에 등이 닿았다. 바로 몸을 뒤집어 되는대로 손톱을 찔렀다. 안 끌려가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누구와 달리 눈앞에 루카는 바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듯 평온해 보였다. 레버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어 비뚤게 앉아있는 모습이 재수 없었다. 루카를 흘겨보던 재영은 기필코 빨려 들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바닥에 달라붙었다. 손가락에 힘을 주고 두 발로 바닥을 조금씩 밀며 앞으로 전진했다. 영락없이 개구리였다.
루카는 하품을 하며 레버를 한 번 더 당겼다. 바람이 더 강해졌다. 그러나 재영은 앞으로 가는 데 정신이 팔려서 뒤로 당기는 힘이 한층 세졌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저 ‘부활한다’ 그 일념 하나로 앞으로 향했다. 루카는 그런 재영을 비웃듯 레버를 뒤로 또 당겼다.
“으아아아악!”
재영의 비명이 울러 퍼졌다. 루카는 시끄러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 어느새 재영의 몸은 레버를 절대 넘볼 수 없는 위치까지 끌려갔다. 이제 다 됐다. 루카는 손을 놓고 기지개를 폈다. 고개도 돌리고 손목도 돌리고 몸도 뒤로 기댔다. 비명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하품도 나왔다. 찔끔 흘린 눈물을 훔치고 앞을 보니 재영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저 멀리 어둠 사이로 날아가는 신발 한 짝이 희미하게 보였다. 루카는 피식 웃었다. 제까짓 게 그래봐야 인간이지. 벽 너머는 까마득한 어둠뿐이었다. 얼마나 까마득하냐면 조금만 멀어져도 어둠에 잡아먹혀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빛이 아예 없어 그랬다. 그나마 잠시간만 루카가 있는 공간의 빛을 받아 저 멀리 날아가는 인간의 발바닥이나 정수리가 보일 뿐이었다.
신발마저 완전히 검은 어둠에 잠겨버리자 루카는 레버를 앞으로 밀었다. 사라졌던 벽이 나타나 쿵! 하고 닫혔다. 일 하나를 마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부활시켜달라고 땍땍거리던 인간도 사라졌으니 이제 인간 세계 드라마나 보면서 또 다른 죽음을 기다릴 차례였다.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느긋하게 앉았다. 인간이란 참 귀찮기 그지없는 존재였지만 그들이 만든 드라마는 봐줄만했고 모든 것은 실재보다는 대충 투영된 가짜가 즐겁기 마련이었으며 인간이 제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겨우 인간이었다. 루카는 서랍을 열었다. 리모컨을 모아두는 칸이었다.
여기는 낮도 밤도 없고 따로 휴식이랄 것도 없었다. 그때그때 자기 취향 따라 쉬면 그만이었다. 귀찮게 땍땍거리던 인간도 사라졌으니 아까 보던 드라마를 마저 볼 차례였다. 하필 주인공이 고백하는 순간에 드라마 스크린이 꺼져버렸다. 작작 놀고 일이나 하라는 뜻이었다. 루카는 리모컨을 집기 위해 서랍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아직 안 끝났어! 부활 시켜달라고!”
하지만 재영은 루카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땍땍거리는 목소리도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더 우렁찬 목소리로 아래서 솟구쳤다. 루카는 급하게 다리를 풀고 레버를 잡아당겼다. 실제로 1차로 당기는 것까지는 성공을 했다. 다시 벽이 열리고 바람이 불며 재영을 뒤로 끌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재영이 루카의 소매에 매달렸다.
루카는 재영을 떼어내기 위해 무자비하게 주먹질을 해댔다. 꼬집고 할퀴고 팔을 이리저리 흔들었지만 재영은 아랑곳 않고 소매를 잡고 기어올랐다. 덩달아 루카도 책상에서 일어나 태초의 힘까지 다해 레버를 당겼다. 재영도 레버를 붙잡았다. 두 존재가 레버를 중심에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서로 레버를 자기 쪽으로 당기려고 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루카 쪽에 있던 레버가 반대로 기울었다. 재영을 잡아당기는 바람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재영은 삼두근과 전완근에 힘을 주고 레버를 끌어당겼다. 생전에 홈 트레이닝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다. 레버가 점점 중간에 가까워졌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는 생각에 재영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부활할 수 있어. 눈을 희번덕거리며 한 번 더 팔에 힘을 주었다.
이쯤 되니 루카는 진심으로 재영이 공포스러웠다. 몸은 물론 얼굴 가죽과 두피도 뒤로 끌려가는 와중에 인간 의지 하나만이 선연하게 레버를 붙잡고 있었다. 두 눈이 시퍼렜다. 빨갛게 충혈돼서 더 시퍼렜다. 비주얼이 장난 아니게 무서웠다.
“이거 순 미친놈 아니야!”
루카가 빽 소리를 질렀다. 이제 재영은 레버를 양손으로 꽉 붙잡고 책상에 발을 지지한 채 상체를 완전히 뒤로 젖힌 상태였다. 눈깔이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루카는 지금 저게 사람 새끼가 맞나 싶었다.
“그러니까 부활시켜 달라고오!”
비명과 고함 그 중간 즈음. 순간 레버가 중간 지점에 탁 걸렸다. 벽이 닫히고 바람이 멈췄다. 뒤로 당기는 힘이 없어지자 재영은 그대로 떨어져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때까지도 손에서 레버를 놓지 않고 있어서 재영이 낙하하는 힘으로 인해 레버가 한 번 더 당겨졌다. 탁. 둔탁한 음이 울렸다.
이제 레버는 완전히 재영 쪽으로 기울었다. 공간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루카도 이제 더 이상 손쓰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뒤로 발라당 넘어진 재영의 발에는 신발이 없었다. 아까 바닥을 기면서 맨발이면 마찰력이 더 생길까 싶어 벗어던졌던 것이다. 벽 너머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던 그 신발이었다. 사방이 고요해진 가운데 루카는 그 사실을 깨닫고 책상에 이마를 박았다.
“하아….”
루카가 한숨을 쉬었다. 재영은 어설프게 일어나 섰다.
“부화..”
“부활하세요….”
“진짜요?”
“예….”
“어떻게 하면 돼요? 어디로 들어가요?”
루카가 소매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재영은 소매 끝자락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들었다. 새하얀 천장이었다.
“위에 뭐가 있어요? 어떻게 하라는, 으아아아아악!”
재영은 그대로 위로 솟구쳐 빛무리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재영이 사라지자 벽이 닫히고 다시 평범한 천장이 공간 위를 장식했다. 레버는 여전히 재영이 있던 곳을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혹시나 해서 레버를 다시 끌어당기려고 해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이 질긴 인간 같으니라고. 루카는 다시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아, 귀찮아. 루카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충분히 좌절할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감정의 소용돌이가 가라앉자 단념하며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앉았다. 그래…. 이게 내 팔자려니 해야지…. 루카는 다시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파란 리모컨과 빨간 리모컨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인간의 삶을 보는 리모컨, 하나는 요즘 유행하는 네오 누아르 로맨스 코미디 유치뽕짝 생존 서바이벌 <귀여운 고양이 씨>를 볼 수 있는 리모컨이었다. 인기 소설 <사랑하는 고양이 씨>의 후속작으로 지난달부터 드라마화되어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갱신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루카가 들어야 하는 리모컨은 인간의 삶을 관찰하는 파란 리모컨이었다. 드라마를 켜봤자 다시 스크린이 꺼질 게 분명했다.
루카가 리모컨을 들고 버튼을 눌렀다. 허공에 스크린이 하나 뜨더니 채널이 돌아가다가 딱 멈췄다. 그 안에서는 조금 전 이승으로 복귀한 구재영이 있었다. 그는 놀라서 기절하려고 하는 장의사를 진정시키며 자기도 놀라 우왕좌왕 하는 중이었다. 장의사의 반응은 당연했다. 누구라도 자기가 관리하고 있던 시체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면 기절할 것이다. 그 꼴을 보자니 한숨이 나왔다.
“에휴. 저렇게 갑자기 일어나면 어떡한담. 부활 처음 해보나.”
저건 부활은 맞지만 살아난 것은 아니다. 한 번 죽은 몸은 결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인간은 육신 없이 저곳에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저 몸도 한 번 죽었으니 세상과 맞닿을 구석이 없다. 재영이 약속한 ‘장례식'만 마치면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남은 미련 다 털어버리고 오라지.
스크린에 수의를 입고 입관실을 뛰쳐나가는 재영이 보였다. 등에 장의사를 업고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그 충격에 장의사가 정신을 차렸다가 다시 기절하기를 반복했다. 루카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진짜 부활 좀 조용히 해. 미친 새끼야….”
‘부활한 인간 뒷수습하기.’ 앞으로 루카가 처리해야 할 일이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