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별
나기연
찬미가 루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장의사가 되어야겠어.’
찬미를 달래던 재영이 물었다.
‘왜?’
‘내가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래. 반려동물 장례 지도해 주는 자격증도 있더라. 너는 잘 할 거야.’
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저 정도 양이면 접시에 담아 어항도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찬미는 그렇게 울고도 더 울었다. 이날 재영은 찬미가 무슨 말을 하든 다 긍정하려고 했다. 네 말이 다 맞아. 마음이 다 옳아. 재영은 퉁퉁 부은 찬미의 눈가를 쓸었다. 루루는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야옹거릴 거 같았다. 하지만 찬미도, 재영도 알고 있었다. 루루는 다시는 눈을 뜨지 않을 것이다. 못할 것이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찬미는 루루의 유골을 아주 작은 돌멩이로 만들어 창가 옆 캣타워에 모셔두었다. 재영은 찬미의 집에 갈 때마다 작은 조약돌이 된 루루를 쓰다듬고 냄새를 맡았다. 창가 옆 캣타워에서는 먼지 냄새와 볕내가 났다. 이전에는 고양이 사료 냄새와 볕내가 났었다. 죽고 나니 떠오르는 게 이런 것들이었다.
찬미는 아예 직종을 바꾸려는 듯 바로 장례지도사 자격증 학원에 등록했다. 사람의 장례식을 치르는 법을 공부한다고 했다. 자격증을 따는 동안 찬미는 죽음과 마주하려고 결심한 사람 같았다. 매일 죽음에 대해, 그 이후에 대해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람은 죽음 속에서 살잖아. 그걸 인정하면 조금 덜 슬플 거 같아.’
열심히 장례 절차를 외우던 찬미가 대뜸 말했다. 재영은 그 옆에서 보고서를 쓰던 중이었다. 휴학과 복학을 밥 먹듯이 하던 재영은 남들보다 늦게 졸업반에 들었다. 4학년이 됐는데도 들어야 할 수업이 산더미였다. 찬미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장례지도사 자격증 공부도 하면서 장례 실습도 나갔다. 누가 봐도 바빠 보였다. 학원에는 의외로 자기 또래 사람이 많다고 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시대인 게 아닐까. ‘죽음’이후에 남겨진 것들이 신경 쓰이는 시대가 온 거겠지. 찬미가 열심히 공부하는 걸 보면서 재영은 자기가 죽으면 찬미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바람은 이루어졌다. 엉망진창인 장례식에서 유일하게 재영이 만족했던 부분이었다.
재영이 처음 장례식에 간 건 12살 때였다. 지금 생각하기에 12살은 너무 못난 나이였다. 이맘때 ‘개복치 멘탈’이라는 말이 유행을 했는데 개복치라는 물고기가 하도 별거 아닌 이유로 잘 죽는 게 웃겨서 그랬다. 온 세상 밈이 그렇듯 한 번 온라인에서 물길을 타기 시작하면 끝없이 변형되다가 사라진다. 개복치는 향후 유독 멘탈이 약하고 잘 깨지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방식으로 흘러가다가 사라졌다. 개복치를 죽이지 않고 키우는 스마트폰 게임도 나왔다. 재영은 개복치 키우기 게임을 하며 ‘돌연사’가 원래 이렇게 쉬운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게임 안에서 개복치는 정말이지 별거 아닌 이유로 죽었다. 밥을 너무 많이 줘서, 햇빛이 강해서, 조개껍질이 있어서, 바다거북이 무서워서, 거품이 눈앞에서 터져서 등등. 죽으면 죽을수록 다양한 죽음 루트가 생성됐다. 돌연사 리스트를 채울수록 이 정도로 쉽게 죽는 존재라면 결국에 죽는 이유 따위는 전혀 중요해지지 않겠구나 싶었다. ‘개복치라서 죽었다. 별거 아닌 것으로.’ 이 사실만 남을 테니까.
실제 개복치는 몸이 무지막지하게 크고 꼬리지느러미가 없고 폭이 좁고 위아래로 훌라후프처럼 동그란, 하지만 제법 뚱뚱한 물고기였다. 재영은 이런 개복치의 성장과정을 알고 있었다. 개복치 게임을 보고 실제 개복치의 성장기 사진을 찾아봤기 때문이었다. 청소년기 개복치는 아직 꼬리지느러미가 붙어있었다. 다 큰 개복치는 그래도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픽토그램으로 만들어진 게임 속 이미지는 더 귀여웠다. 하지만 청소년기 개복치는 훨씬 못생기고 삐죽삐죽했다. 몸의 전체 구성이 대체적으로 부자연스럽게 못생겼었다.
재영이 기억하기에 12살 무렵의 자신은 꼬리지느러미가 퇴화하기 전의 개복치 같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또래보다 성장이 빨라 멀쑥하게 커다란데 여물지 않은 어린아이라 뭔가 서투르고 삐걱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는 재영을 볼 때마다 살 좀 빼라고 잔소리를 했다. 등치가 산만해서는 물컹물컹하고 멍청해 보이면 더 무시당한다고 못 박았다. 아니면 등치 값이라도 하라고 했다. 재영은 ‘등치 값’이 뭔지 몰랐다. 재영은 집안에서는 이상하게 자란 어린아이였지만 조금은 커가는 과정이라 집 밖에서는 애매하게 어른스럽기도 했다. 그런 재영을 보며 어른들은 ‘애가 참 성숙하네. 딸인데도 듬직하게 생겼어.’라고 말했다.
아무튼 재영이 처음 장례식장을 찾은 건 12살 삐죽삐죽 못생긴 꼬맹이 시절이었다. 엄마가 헌화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았다. 엄마가 저를 데리고 절을 하려고 하자 상주 측에서 절하지 않아도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임신한 몸으로 와준 것도 고마운데. 몸 무겁게 절하지 마.’ 엄마는 그 말을 듣고 가볍게 묵념했다. 재영은 엄마 눈치를 보며 눈을 꼭 감고 고개를 숙였다. 이럴 때 엄마 치맛자락이나 잡을 정도로 어린 나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 본 친인척들 사이에서 집에 빨리 가고 싶어 할 정도로는 어린 나이였다. 코가 간지러웠다. 눈도 따갑고 공기가 따끔따끔했다. 엄마는 이런데 와서는 밥 먹고 가는 게 예의라며 상에 앉았다.
피부에 발진이 일고 재채기를 하며 눈물이 줄줄 흘렀다. 빈소에 가득했던 국화가 모조리 생화였던 것이다. 이날 재영은 자기에게 꽃 알레르기가 생겼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엄마는 재영을 안고 병원 응급실로 직행했다. 약을 먹고 재영은 금세 좋아졌다. 재영은 수액을 맞으며 응급실에 누웠다. ‘지 엄마 닮아서 등치도 큰데 뭐 저리 약해? 억척스럽게 생겨서는.’ 할머니는 어린 재영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와 장례식장에 있던 어른들이 빨리 대처를 해준 덕에 재영은 그날 밤 별 탈 없이 잠에 들었다. 하지만 밖에서 할머니와 아빠가 엄마를 혼내는 소리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이 일이 있고 얼마 후, 재영은 개복치 키우기 게임에 흥미를 잃었다.
찬미는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딴 후 바로 대학병원의 부속 장례식에 취직했다. 재영은 간신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찬미는 자주 낮밤이 바뀌었다. 찬미 없는 찬미 집에 재영이 들리는 날이 많아졌다. 집에 도착하면 조약돌이 된 루루를 쓰다듬고 청소기를 돌린 후 밀린 설거지를 했다. 가끔 식탁에 오만 원이 올려져 있을 때가 있었다. 옆에 쪽지에는 매번 이렇게 청소를 부탁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야식은 내가 쏠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맛있는 거 시켜 먹어. 항상 사랑해!] 그러면 재영은 쪽지는 소중히 챙겨 다이어리에 붙이고 오만 원으로 장을 봤다. 그걸로 볶음밥을 해먹고 반찬을 만들었다. 커다란 냄비에 김치찜이랑 고등어 무 조림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놓았다. 자석으로 붙인 화이트보드에 냉장고에 뭐가 있는 지도 적어 놓았다. 옆에 쪽지도 붙였다. [시켜 먹고 남은 돈으로 장 좀 봤어. 그냥 데우기만 하면 되니까 끼니 거르지 말고 잘 먹어.] 이틀 후 찬미는 재영에게 인증 사진을 찍어 보냈다. [재영 표 고등어 찜 ⭑⭑⭑⭑⭑] 재영은 답장했다. [고등어 찜 아니고 고등어 무 조림이야.] 이렇게 지내기를 몇 년, 재영은 아예 찬미의 집에 들어와 집사람 노릇을 했다.
‘재영아. 내가 너보다 오래 살게.’
찬미는 항상 향냄새를 몸에 가득 싣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면 재영은 찬미의 어깨를 툭툭 털어 주었다. 현관문에는 천일염을 가득 담아놓은 솥단지가 우산 옆에 놓여 있었다. 찬미는 재영에게 안겨 웅얼거렸다.
‘내가 너보다 오래 살지 않으면…. 내 손으로 네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일 거 같아.’
재영은 찬미를 꼭 끌어안았다. 그래. 그러자. 우리 장례식을 어떻게 할지 같이 고민해 보자. 재영은 찬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았다. 무력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람은 반드시 죽으니까 그 순간이 왔을 때 자신이 재영 곁에 있었다는 걸 스스로 기억하고 선언하기 위해서였다. 재영도 그랬다. 나의 찬미는 나의 죽음 이후에 어떤 자격이 있을 정도로 내 삶의 일부라는 걸 모두에게 선언하고 싶었다. 재영과 찬미는 마주 앉아 장례식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약속했다. 반드시 재영의 염습은 찬미가 맡아주기로. 입관 때도 꼭 함께해 주기로. 재영은 꽃은 꼴도 보기 싫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빈소에 꽃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자연이 싫은 건 아니니까 억새랑 단풍으로 빈소를 꾸며줘. 헌화는 강아지풀로 하자.’
찬미는 재영이 말을 할 때마다 기뻐하면서 기획을 완성해 갔다.
‘그런데 찬미야. 그래도 네가 먼저 죽으면 어떡해? 나는 네 염습을 해줄 수 없는데.’
‘음…. 그러면 내 머리칼을 잘라 가. 이 집에서 그 머리카락을 두고 장례식을 열어줘. 나는 네가 여는 장례식에서 끝까지 함께 할게.’
찬미와 재영은 꾸준히 원하는 장례식을 업데이트하면서 언제 죽어도 서로의 장례식을 챙겨줄 수 있도록 했다. 혹시 기획서가 사라질 때를 대비해 암기까지 했다. 매번 이렇게 확인했으니 재영은 죽는 순간에도 찬미를 의지했다. 그 아이가 내 삶을 마무리해줄 것이라 믿으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세상은 재영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살아있을 때에도, 죽을 때에도. 누구는 죽기 직전까지 열심히 노력하다 죽었는데, 하다못해 장례식까지 미리 정리해두고 진행 일체를 찬미에게 맡긴다는 유서까지 써뒀는데, 재영의 장례식은 조금도 재영의 유언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가족에게 상복을 입히지 말라는 말은 얼마나 쉽게 휘발되었는가. 빈소는 가을 웜톤 분위기로 꾸며달라는 말은 얼마나 쉽게 묵살되었는가. 특히 꽃. 절대 꽃을 들이지 말라는 말은 아무도 유념하지 않았다. 아빠는 울면서 무어라 고함치고 있었다. 엄마를 붙잡고 분개하고 있었다. 아빠는 툭하면 엄마를 탓했다. 재영은 의아했다. 재영의 죽음에는 누구의 잘못도 없었는데. 엄마랑 동생은 울다가 진이 빠져 아무것도 하지도 않았다. 어린 남동생은 얌전히 상복으로 갈아입고 완장을 찼다. 어린애가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약간 우스웠다. 차라리 엄마가 정장 차림에 완장을 차고 동생이 한복 차림에 리본을 꽂았으면 이보다는 즐거웠을 텐데.
무엇보다 찬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조회사 직원들은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남의 장례식인데 피곤하게 가타부타 하지 말라며 찬미를 나무랐다. 가족은 찬미가 없는 듯 굴었다. 찬미가 겨우 지켜낸 것이 재영의 염습이었다. 재영 입장에서는 찬미가 제대로 하고 있고 온갖 사람들이 선을 넘는 거였지만 이걸 피력할 수 있는 입과 음성은 이미 죽은 후였다. 찬미는 루루가 떠났을 때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재영의 몸을 닦았다. 머리에 입을 맞추고 깨끗한 수의로 갈아입혔다. 재영이 그런 찬미를 보며 울분을 터트리다가 순식간에 쑥 빨려 들어가 루카를 만났다. 그러고 지난한 투쟁 끝에 되돌아온 것이다.
“으아아아아악!!!!!”
부활하자마자 처음 본 것이 찬미 얼굴이었을 때 재영은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물론 찬미 입장에서는 습을 마무리한 재영의 시신이 갑자기 눈을 뜨고 일어나는 크리티컬한 상황이었다. 재영은 고꾸라지는 찬미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누구라도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되살아나면 놀라서 기절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재영은 찬미를 업고 응급실로 뛰었다. 한 번 죽은 몸은 생각보다 움직임이 더뎠다. 몇 번이나 넘어졌다. 다행히 찬미는 재영이 수의 차림으로 응급실을 뛰어다니기 전에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단전에서 뛰쳐나오는 비명과 반가움, 공포와 기쁨을 숨길 수는 없었다.
“꺄아아아악! 구재영?!”
“찬미야! 괜찮아?!”
찬미는 순간 재영이 죽은 게 꿈이었던 건지, 장례식 도중에 재영이 살아난 꿈을 꾸는 건지 헷갈렸다. 하지만 뭐가 됐든 지금 느껴지는 말랑말랑하고 널찍한 등과 자기가 손수 갈아입힌 깔끔한 수의의 감촉이 너무 생생해서 눈만 꿈뻑였다. 찬미가 얌전히 등에 업힌 채 다시 기절하지 않자 재영은 응급실까지 들어가지 않고 옆 화단에 잠시 앉았다. 그리고 찬미의 두 손을 잡고 천천히 설명했다. 장례식이 열리는 3일간만 부활하기로 했어. 장례식까지만 보고 가려고 돌아왔어. 보고 싶었어 찬미야. 사랑해 찬미야. 그 뒤로 재영이 해주는 이야기는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재영이 하는 말 중 어느 부분은 노이즈 낀 음성처럼 심하게 갈라지고 깨졌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음질이 고르지 못하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귓가에 천 같은 게 스치는 기분이 들어서 귀를 긁었다. 그럼에도 개중에 이해할 수 있는 건, 찬미야 사랑해. 앞으로 3일간 부활하기로 했어. 장례식이 말이 안 돼서 돌아왔어. 이렇게 세 가지였다. 찬미는 결론을 도출하고 행동하는 게 빠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재영이 하는 말 중 몇 가지를 이해하자마자 어렵지 않게 결론을 내렸다. 그래.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말자. 지금에 집중하자. 찬미는 재영을 끌어안았다. 빳빳한 수의가 찬미의 턱을 긁었다.
“재영아. 괜찮아. 다 이해했어.”
재영은 찬미를 마주 안았다. 부활한 몸은 이전의 몸과 약간 달라서 감촉이 조금 둔하게 느껴졌다. 이전과 같은 따듯한 품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재영은 만족했다. 찬미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우리 집으로 가자. 여기서는 안돼. 여기서는 못해.”
재영은 서서히 눈앞이 점멸하는 것을 느꼈다. 검은 장막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귓가에 루카의 목소리가 울렸다. 3일이에요. 그 기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어요. 모든 걸 거기에 두고 오세요. 가져갈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남길 건 다 남기고 오는 거예요. 그리고 서서히 앞이 밝아졌다. 재영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찬미는 루카의 목소리를 못 들은 거 같았다. 재영은 밝게 웃었다.
“응. 그러자. 나 루루도 쓰다듬고 싶어.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루루를 못 봤어.”
단 3일이라도 재영은 저를 아는 찬미와 함께하고 싶었다. 단 3일이라도 찬미는 저가 아는 재영을 애도하고 싶었다. 찬미는 행복해하며 말했다.
“집에 가서 장례식을 하자. 친구들도 여기로 부르자. 억새풀이랑 단풍나무 묘목도 지금 주문하면 금방 올 거야. 강아지풀은…, 가는 길에 몇 개 뽑자.”
재영과 찬미는 한참을 안고 있었다. 죽음은 없었던 일이 되지 못한다는 걸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한 명은 당사자라 알았고, 한 명은 숱한 장례식을 치르며 알게 되었다. 죽은 몸은 심장이 뛰지 않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런 상관없었다. 그러다 찬미는 퍼뜩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재영아. 가족 보고 갈래? 어머니랑 네 동생이 많이 울었어.”
가족. 엄마와 동생. 그리고 아빠.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람들. 재영은 고민했다. 재영은 커갈수록 가족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고 그들도 재영이 어떤 사람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만나면 울겠지. 아무리 미워했어도 울겠지. 아빠조차도 울었으니까. 그래도 사랑했거든. 그런데도 좋아했거든.
“그래도 안 볼래.”
“왜?”
“왜냐면 내 가족은, 결국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물을 테니까.”
왜 죽어야만 했냐고. 그건 대답할 수가 없어. 나는 이별을 하러 온 거야. 엄마랑 동생은 나와 이별하지 못해. 아마 아빠도. 재영의 대답에 찬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찬미의 차를 타고 떠났다. 3일 뒤 돌아와야 했지만 떠났다. 이별하기 위해서. 끝없는 어둠으로 미련 없이 사라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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